“달러 기축통화 지위, 더는 당연하지 않아”
15일 블룸버그의 칼럼리스트 슐리 렌에 따르면, 지난주 백악관의 불확실한 무역 정책으로 촉발된 금융시장 혼란은 단순한 주식시장 변동을 넘어 미국 국채에 대한 근본적 신뢰를 시험하는 국면으로 번지고 있다. 최근 투자자들 사이에서 “미국 국채는 여전히 안전한가”라는 질문이 더는 상상 속 가정이 아닌 현실적인 우려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통상 미 국채 시장(총 규모 약 28조6천억 달러, 약 4경800조원)은 금융시장의 안정성과 직결되며, 통상적으로 주목을 받는 일은 드물지만, 현재의 상황은 이례적이다. 지난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이 ‘해방의 날’을 선언하며 전방위 관세를 발표했을 당시, 전통적인 안전자산인 국채 가격은 상승했고, 주가는 하락했다. 그러나 관세 유예 발표 이후에는 주식, 국채, 달러가 동시에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2019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레포 시장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비상 개입한 이후 국채 시장에서 가장 큰 충격으로 기록됐다.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 vs. 달러 신뢰 붕괴
가장 유력한 해석은 시장 참여자들이 인플레이션 가능성과 성장 둔화를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기물 금리가 상승하면서 수익률 곡선이 가팔라졌고, 이는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시사한다.
더 심각한 시나리오는 달러 자산 전반에 대한 수요 하락이다. 달러의 교역가중 환율은 6개월래 최저치로 떨어졌으며, 유럽연합(EU), 일본, 스위스 등 미국 관세 대상국의 통화(유로, 엔, 스위스 프랑)는 모두 강세를 보였다. 국제 긴장이 고조된 시점에, 안전자산으로 여겨져야 할 달러가 약세를 보였다는 점은 금융시장의 신뢰 축이 흔들리고 있음을 방증한다.
특히, 달러의 향후 강세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는 ‘1년 리스크 리버설(one-year risk reversal)’ 지표가 5년 만에 처음으로 음전환했다는 점은 투자자들이 달러를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기축통화 지위 흔들릴 위기
문제는 미국 정책 당국의 인식과 대응이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 인사들은 강달러가 미국에 불리하다고 발언해 왔으며, 일부는 외국인 국채 보유자에게 수수료를 부과해 달러 가치를 낮추는 방안까지 거론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미 의회는 재정적자 확대를 방조하는 행보를 이어가며 국가 부채 구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달러와 미국 국채에 대한 시스템적 신뢰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달러 자산에 대한 전면적인 이탈이 현실화될 경우, 이는 미국 정부의 채무불이행 가능성까지 거론될 수 있는 수준이며, 글로벌 경제에도 심각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시장 조정이 아닌, ‘달러와 국채는 언제나 안전하다’는 믿음이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미 정부가 지난주 시장이 던진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