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매도 영향
수출·성장 둔화 우려
러시아 루블화가 올해 들어 달러 대비 45% 이상 급등하며 1994년 이후 가장 높은 연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루블화는 달러당 78루블 안팎에서 거래되며,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전 수준에 근접했다. 러시아 정부가 올해 평균 환율을 달러당 91.2루블로 제시했던 것과 달리, 유가 하락과 서방 제재 속에서도 강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강세 배경에는 고금리 기조와 외화 수요 급감이 자리한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장기간 고점에 유지했고, 이로 인해 루블화 예금과 채권 수요가 확대됐다. 동시에 제재 영향으로 달러와 유로 접근이 제한되면서 외화 수요가 크게 줄었다.
러시아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도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 재무부가 국부펀드 자산에서 위안화와 금을 매도하며 재정 수입을 보완했고, 러시아 중앙은행도 이에 맞춰 외환 매도에 나섰다. 유가 하락으로 에너지 수입이 감소했지만, 통화 강세는 유지됐다.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개월간 석유·가스 수입은 전년 대비 22% 감소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 강세가 물가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통화 강세의 디스인플레이션 효과가 아직 남아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정책 당국은 금리 인하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경제계에서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스톨리핀 성장연구소는 보고서에서 강한 루블과 고금리 환경이 맞물리며 경기 둔화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올해 0.5~1%로, 지난해 4.3%에서 크게 낮아졌다.
보고서는 루블화가 과대평가돼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투자 환경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알렉산드르 쇼힌 러시아 산업인연합 회장도 “루블 약세가 수출과 재정, 경제 전반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단체는 조만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경제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국제 유가는 반등했지만 연간 기준으로는 여전히 약세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62.52달러,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58.61달러로 각각 상승했으나, 연초 대비로는 16%, 18% 하락해 2020년 이후 최대 연간 낙폭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도 루블화 강세는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