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크로 헤지펀드들, 20년래 최악
수시로 바뀌는 트럼프 정책, 변덕성 높은 시장 반응에 대응 실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월가의 거시투자 전략이 연이어 무너지고 있다고 31일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관세, 외교정책, 세제 등 주요 변수들이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월가의 매크로 헤지펀드들은 기록적으로 부진한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 내러티브는 방향을 잡지 못한 채 급변하고 있다. 관세는 철회됐다가 재개되고, ‘미국발 매도’ 바람이 나온 직후엔 곧바로 ‘저가 매수’ 흐름이 뒤따른다. 전통적인 재정 불안감이 확산되는가 하면, 엔비디아는 인공지능 기반 생산성 시대를 제시하며 낙관론을 자극한다.
이런 예측불가능성이 누적되면서, 기관투자자들은 시장 사이클을 전망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졌다고 느끼고 있다. 그 결과, 헤지펀드 업계 전체가 2004년 이후 가장 나쁜 연초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JP모건자산운용의 프리야 미스라는 “거시 투자는 원래부터 쉬운 영역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며 “트렌드에 베팅할 수는 있어도, 급변하는 상황에 휘둘리지 않도록 방어가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이 공개 비판에 격분하고, 관세 정책이 법적 위기를 맞은 이번 주에도 월가는 트럼프식 보복 가능성에 긴장했지만, 양호한 기업 실적과 경기 회복 기대가 투자심리를 지지하면서 미국 주요 지수는 상승 마감했다. S&P500 지수는 주간 기준 2% 가까이 오르며, 5월 한 달 동안 6% 상승해 2023년 말 이후 최고 월간 수익률을 기록했다. 하이일드 채권 역시 10개월 만에 최고 수익률을 냈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신뢰는 여전히 낮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금리 인하 기대는 유지되고 있고, 관세 인플레이션 우려는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여기에 정책 번복, 데이터 왜곡, 백악관의 반응적 접근 등이 겹쳐 매크로 전망은 더욱 어렵게 됐다. 트럼프 재선 이후 단 6개월 만에 시장은 경기 호황과 인플레이션 재확산, 심지어 침체 가능성까지 모두 가격에 반영했다.
특히 4월의 변동성을 고려해 채택된 방어 전략들은 5월에 대거 실패로 돌아갔다. 가치주, 하방 옵션, 채권 중심 포트폴리오, 스태그플레이션 베팅 모두 손실을 입었다. 장기 국채를 추종하는 ETF(TLT)는 S&P500과의 성과 차이가 2022년 이후 최대폭으로 벌어졌다.
방어적 주식 전략도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경기민감주 대비 수익률 격차는 10%포인트에 달해, 2009년 강세장 출범 이후 두 번째로 큰 격차를 기록했다. 골드만삭스가 구성한 스태그플레이션 시나리오 베팅 종목 바스켓은 20년래 최악의 월간 성과를 냈다. VIX 지수 기반의 대표 ETF 두 종목은 각각 25% 이상 급락했다.
‘하방 리스크를 제한하고 상방은 제한된’ 구조로 설계된 2025년 인기 전략인 FT 버퍼 ETF(BUFR)도 부진했고, 수익형 투자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JP모건의 프리미엄 인컴 ETF(JEPI)도 수익률이 저조했다.
반면, 단순히 포지션을 유지해 온 개인투자자들은 조용한 승리를 맞고 있다. 4월 급락 당시 대규모 저가 매수에 나섰던 개인 투자자들은 이후 100억달러(약 13조8000억원) 이상을 뱅가드 S&P500 ETF(VOO)에 추가 투입했다.
실제로 선거 이후 S&P500 지수는 전체적으로 2% 상승했지만, 급락과 반등이 반복되며 시장 흐름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만약 해당 시기 동안 최악의 5거래일을 피했다면 수익률은 20% 이상으로 높아졌겠지만, 반대로 최고 상승률을 기록한 5거래일을 놓쳤다면 수익률은 오히려 16%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컬럼비아 스레드니들의 금리 전략가 에드 알후세이니는 “트레이더들이 계속해서 경제의 자연 회복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군대에서는 ‘천천히 가는 것이 매끄럽고, 매끄러운 것이 곧 빠르다’는 표현이 있다”며 “거시 투자자들에게도 이 말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