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소득에 세금 인상 명시
미국 자산 보유 외국인 대상
채권·달러 수요 위축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의회를 통해 추진 중인 1,000쪽 분량의 세입·지출 법안에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조항이 포함돼 금융시장의 우려를 사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30일 보도했다.
문제의 조항은 지난주 하원을 통과한 법안에 ‘섹션 899’라는 이름으로 삽입됐다. ‘불공정 외국세에 대한 제재 집행’이라는 제목 아래, 미국이 ‘차별적’이라고 판단하는 외국 조세 정책을 시행 중인 국가에 대해 개인·법인의 미국 내 소득세율을 인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자·배당 등 외국인의 미국 자산에서 발생하는 소극적 소득에 대해 세율을 단계적으로 최대 20%포인트까지 올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캐나다, 영국, 프랑스, 호주 등과 최저 법인세 협약을 반영하는 국가들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분석가들은 해당 조항이 시행될 경우 이미 흔들리고 있는 외국인들의 미국 국채 신뢰도를 추가로 낮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멜버른 소재 중개회사 페퍼스톤의 마이클 브라운 전략가는 “이미 미 국채가 외국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자산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불리한 과세까지 더해진다면 미국 자산에서 손을 떼려는 움직임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상은 국부펀드, 연기금, 정부기관은 물론 일반 개인투자자와 미국 내 자산을 보유한 해외 기업까지 폭넓게 포함된다. 블룸버그는 외국인이 보유 중인 미국 자산 규모가 약 31조달러(약 4경 2,470조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도이치은행의 외환 전략 책임자 조지 사라벨로스는 보고서에서 “해당 조항은 미국 자본시장을 미국의 경제 목표 달성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명백한 신호”라며 “무역 전쟁을 자본 전쟁으로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AXA그룹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질 모엑은 이 조치가 장기 금리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다고 밝혔고, ABN 암로은행의 로히어 콰드플리흐 미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외국 수요를 제약한다면 이는 곧 달러에 하방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법안 추진과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법적 제동에 직면한 상태다. 관세는 트럼프식 감세 재원을 충당할 주요 수단으로 거론돼 왔으나, 지난 29일 연방항소법원이 하급심의 관세 무효 판결에 대해 일시 효력 정지를 결정하면서 상황이 유동적으로 바뀌었다.
법안에 포함된 섹션 899 조항은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지난해 허드슨베이캐피털 소속 당시 제시했던 외국인 국채 투자자에 대한 ‘이용료’ 부과 구상과도 유사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모건스탠리와 시그넘글로벌어드바이저스 등 주요 기관들은 해당 조항이 유럽 주식, 달러, 미 국채에 모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으며, 법안 최종안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브라운 전략가는 “처음엔 투자자들이 이 조항의 의미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관심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