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간 무역 틀 합의…철강·자동차 일부 관세 완화
대중국 협상 앞두고 정치적 승리 연출 의도
디지털세·의약품·농산물 등 주요 쟁점은 미해결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국과의 신규 무역 틀(framework)을 ‘역사적 성과’로 자평하며 발표했지만,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자 당초 예고했던 ‘완전하고 포괄적인’ 자유무역협정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드러났다고 9일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영국과 무역 협정 발표는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전승 80주년에 맞춰 정치적 상징성을 강조한 행사로 기획됐다. 백악관 집무실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에 사전 예고 한 바 있으며,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가 집무실 책상 위 전화로 직접 연결하여 협정 체결을 알리는 연출도 포함됐다.
미·영 합의 내용
합의된 내용에 따르면 미국은 대(對)영국 수출품에 대해 시장 접근성과 통관 절차에서 개선을 받는 반면, 영국은 미국산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에 대한 일부 관세를 완화받게 된다. 그러나 디지털세, 의약품 관세, 식품 기준 문제 등 미국 기업들이 중시하는 핵심 쟁점들은 향후 협상으로 넘겨졌다.
특히 디지털세와 의약품 관련 협상은 전혀 진전되지 않았으며, 영국은 미국 기술기업을 겨냥한 디지털세를 유지하기로 했고, 양측은 향후 디지털 무역 협정에 대한 모호한 협력 약속만을 내놨다.
또한 미국은 일부 농산물에 대한 영국 관세 인하를 얻었지만, 식품 기준 규정은 유지됐다. 철강·알루미늄 관세 관련해서도 양국 발표는 상충됐다. 영국 정부는 미국의 해당 관세가 ‘0’으로 조정될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백악관은 “대체 방안을 협상할 것”이라는 표현만 내놨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연간 최대 10만 대까지 10% 관세 적용을 약속했으며, 철강·알루미늄 관세 완화 역시 향후 다른 국가들과의 협상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브래드 셋서 외교문제협의회(CFR) 선임연구원은 “유럽, 일본, 한국과의 향후 협상에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듀크대학교 법학대학원 팀 마이어 교수는 “이번 발표는 실질적인 협정이 아니라 틀일 뿐이고, 시장이나 경제 관점에서는 의미 없는 수준”이라며 “더 볼 필요가 없는 합의”라고 평가했다.
스타머 총리는 “세부 사항을 마저 조율해야 한다”고 인정하면서도 “훌륭한 이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장된 평가 아니냐는 질문에 “양측 모두에 좋은 협정”이라고 응수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발표가 글로벌 시장을 흔들고 있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하락세를 보이는 지지율 속에서 경제정책 성과를 부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보좌관은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며 연쇄적 합의 발표를 예고했다.
투자자들은 이날 발표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며 미 증시와 가상시장 전반에 걸쳐 상승세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국가는 협정을 원한다”며 관세 정책이 미국에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본 10% 관세를 유지한 채, 다른 국가에는 이보다 높은 관세율도 가능하다고 밝혀 향후 협상에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대중국 협상 앞둬
현재 미국은 중국과의 협상 개시를 준비하고 있으며, 일본·한국과도 고위급 회담을 진행 중이다. 인도와의 진전도 언급됐다. 그러나 중국과의 협상은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이번 협정을 환영하면서도 “진정한 전환점은 미국과 중국 간 긴장 완화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